나이키 선생님

Dream칼럼 2008/10/17 01:34

  옛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남이 잘 되면 그 만큼 시기와 질투가 유독 높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속성을 이 만큼 잘 드러내는 게 또 있을까? 특히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더 잘 나간다면 '위암까지 걸리는'게 우리나라 사람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남보다 더 잘났다는 걸, 적어도 "꿇리지는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한다. 다른 나라보다 유독 유명 브랜드, 명품의 가격이 비싼데도 불구하고 없어서 못 파는걸 보면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놀랬스 시계, 구찌, 샤넬부터 빈폴, 나이키, 아디다스 등의 상표까지. 혹자는 "'나이키', '아디다스'가 메이커야?"라고 생각하는 사람까지 있으니 말 다했다.

  아직 대학생이고 하니까 놀랬스(롤렉스), 구찌 이런거 차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사람을 아직 내 주위에서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나이키, 아디다스 등 공부모드로 전환한답시고, 그런 체육복, 운동화를 거리낌 없이 신고 다니는 '(그들이 좋아라하는 표현인)예비교사'들을 수 없이 보았다. 체육용품의 시작은 나이키요, 그 끝은 아디다스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 개인적으로 참 너무나도 한심해 보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 '그 메이커를 입으면 매국노다, 국산을 졸로 보니 너는 선생될 자격이 없다.'라고 독설을 퍼부을 건 아니다. 엄연히 교사도 사람이고 다른 국민들이 누리고 싶은 거 누리는 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이 '예비교사'의 칭호에서 '예비'가 빠지고 나면 사정은 달라진다. 뭐 예비교사는 사람이고, 교사는 사람도 아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 '교사'라는 본분을 다하고 있는 곳. 학교라면 문제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초등학교에 가면 우리 사회가 다양해진 만큼, 다양한 학생들이 상존해 있다. 개성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이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다. 돈이 넘쳐나서 어디 쓸 떼 없나 둘러보는 집 자녀가 있는가 하면, 하루 먹고 하루 살기 힘들어 근근이 살아가는 집 자녀도 있다. 그렇게 가정환경이 너무나도 다른 자녀들이 같은 시각, 같은 교실에서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있는 집 자식들이라고, 같은 반에 있는 친구들 중 잘 사는 애들은 좋은 가방에 좋은 메이커 옷, 삐까 뻔쩍한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친구는 다 낡은 운동화 한 번 바꾸기도 버겁다. 이 상황에서 후자의 친구들은 서로 말을 안한다 할지라도, 그 나이키, 아디다스라는 메이커를 보면서 상대적인 열등감에 쉽게 휩싸일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는가?

  그런데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다.' 바로 선생님이다. 체육시간에 보니, 선생님이 메이커 운동복과 운동화를 신고 있다. 나도 신어보고 싶은 운동화인데, 30만원이 없다. 게다가 선생님은 운동복까지 메이커다. 그걸 갖고 싶어도 가지지 못하는 학생의 마음은 어떨지 생각해 보았는가? 당신이 만약 돈 없는 학생의 입장에 서서, 선생님의 그런 복장을 본다면 당신은 어떻겠는가?  가뜩이나 학급 친구들의 귀티나는 모습에 짜증나는데, 선생님까지?

  설령, 학급 학생들 중 1명 빼고 나머지 모두가 나이키를 신고 다닌다 하더라도, 선생님은 그 한 명을 위해서라도 메이커를 입고 수업을 하면 안 된다. 그 1명이 느끼는 자괴감은 그 어느 누구도 표현할 수 없는 크나 큰 상처일지 모른다. "너는 커서 뭐가 될려고 그러니?", "너희 집안이 그러니까 너가 그렇지." 같은 말만이 학생에게 상처를 주는게 아니다. 선생님이 하는 행동과 더불어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물건까지 학생에게는 크나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수업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메이커 옷을 입어도 상관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는 지양해야 한다. 정말 자신이 맡은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세심한 것 까지도 배려하고 신경써야 하는 게 선생님이다. 그런거 따지기 싫다. 그냥 내 맘 내키는 대로 살겠다. 하는 사람은 자신이 '나이스(nice)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 '나이키(nike)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늦지 않았다. 후자라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임용시험 준비를 포기하기 바란다.  메이커는 사람의 외양은 세워줄지 몰라도(사실 세워주지도 않는다), 선생님의 권위를 세워주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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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선생님

Dream칼럼 2007/01/04 00:40
 작년 말, 초등교사 임용감축으로 인해 교대에선 일련의 수업거부가 있었다. 학급총량제 폐지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악반대, 교육부장관의 면담을 요구하며 짧게는 보름정도에서 길게는 한 달이 넘는 기간동안 일절 수업을 받지 않았다. 그러한 수업거부로 교육부는 다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교대생들은 수업거부를 철회했다.

 일부 학생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사실 속내를 들여다 보면 이번에 수업거부를 하게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임용감축에 따른 반발'이다. 자신들의 취업이 보장되지 못할 수도 있는 두려움이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실어 주었고, 그 힘은 다른 사안을 명분으로 내걸고 수업거부라는 막강한 카드를 꺼낼 수 있게 하였다. 사실 대부분의 교대생들이 앞에서 말하는 그러한 이유들로 수업거부를 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점에 있어서 (모든 학생들은 아니지만*1)교대생들은 참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재 시대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고, 정년보장의 철밥통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가만히 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건 현직교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그 사람들은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교사가 먼저 자유주의 경쟁에 내몰리게 되면, 학생들도 자유주의(혹은 신자유주의)에 빠져 치열한 생존경쟁만이 남을 것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엘빈토플러는 최근에 출간한 '부의 미래'에서 기업을 100마일로 비유했을 때, 학교를 10마일로 비유하였다. 학교는 현재 빠른 사이클로 변하고 있는 이 시간 속에서 아직도 19세기의 산업시대에 걸맞은 공장식 학교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강력한 교원노조와 교사들의 저항이 그들의 독점적 특혜를 보호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만큼 아이들은 점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교육이라는 것은 인간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일정한 체계를 가지고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현재 21세기의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교사는 그러한 기득권에 사로잡혀 학생들에게 21세기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경쟁의 방법'과 더불어 학생의 idea의 계발까지 가로막고 있는게 아닌가?

 21세기 교사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알려주고 그 속에서 '사랑'을 찾아 주어야

 물론,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듯이, 지금의 시대에서의 이 치열한 경쟁은 인간미가 사라지는 결과를 낳는다. 자신의 이익에만 사로잡혀 자신과 같은 객체인 인간을 무시해버리는 작태는 무시무시한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는 핵무기 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교사가 짊어져야 할 가장 큰 역할은 그러한 세상 속에서 인간의 사랑을 찾아주는 전령사가 되어야 한다. 인간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인간은 실로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자신에게서 배우는 학생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

 교사도 이제 21세기에 적응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21세기의 선생님은 자유경쟁 속에서 인간미를 살려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선생님 스스로가 자유경쟁에서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에게 21세기를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수 있다. 그렇게 자유경쟁을 채득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해주는 인간미는 이 삭막한 세상을 조금씩 조금씩 풀어줄 수 있는 하나의 열쇠가 되지 않을까? 자유경쟁이 무조건 안 좋은 것이라고 내미는 지금의 교대생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가져야 할 21세기의 선생님상이 어떤 것인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길 바란다.

 
*1 모든 학생들은 아니라고 전제를 단 이유는
     내가 경험한 바로는 정말 한국의 교육을 바라보고 투쟁하는 학생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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